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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제목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도서정보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정선태 옮김ㅣ가격 38,000원ㅣ분류 역사ㅣISBN 978-89-92920-74-2(93910)

왜 이러한 지도자가

대와 역사를 움직였던 것일까?

6년간의 단독 심층 취재! 퍼즐처럼 복원되는 사실 그대로의

도조 히데키, 그리고 쇼와 시대의 천황!


 


 

일본 최고의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역작!


 

 

 

제 목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지은이

호사카 마사야스

옮긴이

정선태

판 형

신국판 변형

면수

708쪽

발행일

2012년 8월 7일

가격

38,000원

분야

역사일반

ISBN

978-89-92920-74-2(93910)


 

책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기념비적 저작, 국내 첫소개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다치바나 다카시, 사노 신이치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로 손꼽힌다. 일본 근대사, 특히 쇼와사의 실증적 연구에 주력해 다양한 자료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150여권의 저작물을 출간한 독보적인 작가다. 33세에 편집자 생활을 접고, 6년에 걸쳐 도조 히데키 시대의 자료와 관련자를 수백명을 취재해 그저 ‘혐오감을 유발하는 A급 전범’ 정도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도조 히데키의 실체를 드러낸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는 1979년 초판 출간 이래 30년간 지속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그의 출세작이다. 초판은 <전통과 현대>에서, 문고판은 문예춘추에서 나았고, 2005년 다시 치쿠마서방에서 문고판이 재출간된 현대의 고전이기도 하다. 호사카 마사야스의 책 중 한국에 소개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이번 페이퍼로드에서 처음으로 국민대 정선태 교수의 완역으로 최초로 출간한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는 전형적인 군인 출신 정치가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으로 꼽힌다. 한때 도조는 대일본제국의 광영을 만천하에 떨칠 영웅이라며 일본인의 추앙을 받았지만, 연합군에 패전한 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몰락했다.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그는 ‘역겨운 멸시의 대상’으로 평가되어 왔고, 그의 행적은 일본 근대사의 치부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도조 히데키를 불편하고 역겨운 대상으로만 남겨두어도 괜찮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도조 개인에 대한 매도는 역사적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민중을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근대 일본 정치의 한계를 도조 히데키나 몇몇 전범들에게만 뒤집어씌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점에 문제의식을 느껴『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를 통해 도조 히데키를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되돌려놓고자 했다.

 

“이 군사 지도자는 정치과 군사의 관계에 대해 무지했고 국제법규에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군인이야말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 그는 국가를 병영으로 바꾸고 국민을 군인화하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여겼다. 그런 그는 적어도 20세기 전반의 각국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인물이었다.

왜 이러한 지도자가 시대와 역사를 움직였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나라가 가장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다.”



-저자 서문 중에서



도조 히데키는 육군중앙유년학교,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의 요직을 두루 거쳐 수상에까지 오른 전형적인 ‘정치군인’이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1942년 수상, 육군상, 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1937년 관동군 참모장으로 근무하면서 중일전쟁(지나사변)을 직접 경험한 그는 1941년 12월 진주만 폭격 이후 확대된 전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전쟁의 폭풍우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패전 후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서 교수형 판결을 받고 1948년 12월 처형된다.

도조 히데키의 삶은 근대 일본의 전개 과정과 대체로 일치한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서구를 모방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 일본을 일약 아시아의 강국을 넘어 세계의 열강으로 키운 힘은 전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시기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시작하여 청일전쟁·러일전쟁·제1차 세계대전·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쟁들은 근대 일본을 형성한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전쟁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은 군인일 수밖에 없다.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한 후 군부의 지도자가 되는 길은 곧 일본의 지도자가 되는 길이기도 했다. 패전 이전 수상을 지낸 사람 중 군인 출신이 적지 않다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러한 역사적 토양이 키운 도조 히데키는 근대 일본의 군사적·정치적 성격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도조 히데키를 통해 근대 일본의 실상에 다가가고 싶었다고 말하거니와, 사실 총력전 시대를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도조를 문제 삼는 것은 근대 일본의 정신사를 직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는 근대 일본의 역사뿐만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에 고통을 겪어야 했던 동아시아의 역사를 조명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불안한 일본, 왜곡되는 역사



패전 후 일본 국민들은 도조 히데키를 비난하면 면죄부라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다. 도조를 재평가한다는 미명아래 그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도조 히데키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서양의 침탈 아래 신음하는 아시아 민족들을 해방하고 궁극적으로 아시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대동아공영권’을 실현하기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일본 국민이 안고 있는 불안을 이용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일본의 아시아 지배 욕망, 나아가 세계 지배 욕망이 또다시 꿈틀댈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조부는 평화를 사랑하셨으며 친절한 성품을 지니신 분이었다. 외국의 침략자들로부터 자신의 조국을 지킨 것이다. 그분이 저지른 죄라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죄밖에 없다.”

-도조 유코의 인터뷰 중에서



도조 히데키의 손녀인 도조 유코는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서 일본의 전쟁 논리를 합리화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2007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야스쿠니신사의 전범 위패를 분사하자고 주장하는 자민당 의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었다면 도조 유코는 과연 도조 히데키를 이렇듯 열렬하게 옹호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도조 유코의 주장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30여 년간의 한국 역시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했다.

어떤 반동의 논리가 현실 속에 틈입해 들어올지 모를 일이다.




 


 

책속으로


 

◆ 극동국제군사재판을 받을 무렵

도조는 일반 변론에 나서는 것은 단념했지만 그 대신 진술서 집필에 더욱 공을 들였다. (…중략…) “황공하옵게도 늘 평화를 애호하시는 폐하의 책임도 아니며, 나의 지도 아래 애국의 열성에 불타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 희생을 견디며 활동한 국민의 죄도 아니고, 나의 지도 아래 일한 동료 여러분의 책임도 아니다. 전적으로 개전 당시 최고책임자였던 나의 책임이다” (…중략…) 진술서 전체에 가득 찬 자학적 표현에는 오히려 전시 하 절정에 있을 때와 상통하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는 듯했다. (본문 631쪽 중)

 

◆ 어린시절의 교육

지방유년학교라고 말은 하지만 군대 내부의 조직이다. (…중략…) 일단 일이 발생하면 군인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사지死地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깊이 새긴다. 너희들의 목숨은 대일본제국 천황 폐하께 바친 것이라고 철저하게 교육 받는다. <군인칙유軍人勅諭> 복창이 집요하게 요구된다. (…중략…) 도조 집안에서는 할아버지 히데토시가 유년학교 제복을 입은 손자를 기다렸고, 다섯 명의 동생들도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을 보려고 바짝 다가앉았다. 그리고 히데노리가 경례 방법과 동작을 점검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봤다. 저녁식사 후에는 자신의 방으로 히데키를 불러들여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청일전쟁 후의 정세를 설명했다. 유럽은 일본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다, 이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각오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히데키의 의욕을 자극했다. 시야가 넓은 군인으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영재교육이었다. (본문 43~44쪽 중)

 

◆ 전쟁 개전을 앞두고

통수권이라는 추상적이고 무책임한 기구가 초래한 잔재를 청산할 숙명을 가진 수상의 눈물, 누군가 언젠가는 이 방에서 흘리지 않으면 안 될 눈물이었다. 그리고 이 숙명을 담당한 사람이 대일본제국 헌법 발포 이래 스물일곱 번째 수상인 도조 히데키였다. 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순을 청산할 사람으로 등장할 것을 재촉한 것은 육군상이었던 그 자신의 궤적 속에 있었다. 충실한 신봉자는 무작위無作爲의 모반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도조의 통곡은 한층 격해졌다. 정말이지 울부짖음이라고 할 만했다. 통곡은 자기성찰이 아니라 더욱 격렬한 전투심을 낳는다. 그리고 그 전투심이 그를 이해하는 벗으로서 당분간 함께 걸어가게 된다. 이제 시대는 슬픈 지도자의 손바닥 안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본문 360쪽 중)

 

◆ 도조 히데키와 히로히토 천황의 관계

도조는 임시방편적인 상주는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의 보필자들이 결과만을 그것도 때로는 억지스럽다고 생각할 만한 내용을 상주한 것과 달리, 도조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까지 보고했다. 물론 천황은 과정을 알아도 참견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도조는 자신의 상주 방법을 “폐하를 안심시켜드리는 것”이라고 부하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은 천황의 신뢰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천황은 육군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처럼 신뢰할 수 없는 집단 안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보필자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것이 도조 히데키였다. (본문 309쪽 중)

 

◆ 전쟁 초기의 승전보

도조와 해군상 시마다가 모습을 보였을 뿐인데도 출석자들의 환성이 일었다. 그들에게 도조는 구국의 영웅으로 비쳤던 것이다. 수상 관저에는 국민으로부터 전보와 전화가 쇄도했다. 중신 오카다 게이스케를 비롯하여 요인들도 잇달아 찾아와 함께 기뻐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도조의 사저에도 사람들의 환호성이 밀려들었다. (본문 368쪽 중)

 

◆ 역전되는 전세

일본 해군은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다. 어쩌다 이런 사태에 이르렀을까. 일본 해군의 무전을 모두 엿들은 미국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가해왔던 것이다. 작전의 성공을 믿었던 군령부는 축하연을 준비하고 보고를 기다렸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좀처럼 낭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해외 방송은 미국이 미드웨이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일본 기동부대 섬멸.’ 믿기 어려운 보도를 접한 군령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본문 407~408쪽 중)

 

◆ 정신론으로 기우는 도조 히데키의 말년

그는 점점 더 정신론으로 기울게 되었고, 아케노明野 비행학교를 시찰할 때에는 열대여섯 살 먹은 소년들에게 “적의 비행기를 어떻게 격추시킬 것이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소년들은 기관총으로, 고사포로 격추시키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도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소년이 “저의 기백氣魄으로 격추시키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야 도조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것이 정답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비행학교 교관이나 하사관이 그런 대답에 만족스러워한다면 미담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전쟁을 지도하고 있는 최고책임자가 소년들과 이런 시기에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확실히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전쟁을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사태 수습에 힘을 쏟아야만 하는 때, 그는 오로지 자신의 충족감을 얻기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 509쪽 중)

 

◆ 일본의 패전 발표

15일 아침 라디오 방송은 전 국민에게 정오에 중대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라디오를 들으라고 호소했다. (…중략…) 이윽고 천황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몇 분 만에 사라졌고, 아나운서가 ‘패전’에 이르기까지 경과를 담담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략…) ‘종전까지 일사봉공一死奉公했고 이제부터는 폐하의 명령대로 꿋꿋이 재건에 봉공할 것이다. 봉공의 방향이 다를 뿐 의의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중략…) 만약 이것을 도조의 본심이라고 한다면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가 없다. 정치 지도자로서 자신의 책임은 어떤 것이었을까. (본문 581~582쪽 중)

 

◆ 자기 비판을 추동하지 못하는 타자 비판은 자기정당화로 귀결될 수 있다

 

일본 우익의 비이성적인 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비난을 넘어 냉철하게 비판하는 수준으로 나아가는 게 당연하다. 이와 함께 우리의 (무)의식 속에 일본 우익의 논리가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기에 대한 비판을 추동해내지 못하는 타자에 대한 비판은 자기합리화나 자기정당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도조 히데키라는 ‘유령’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일본 사회를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되 동시에 그 눈을 돌려 우리 사회는 어떤지 냉정하게 응시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도조 히데키들’의 광기에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자 서문에서)


 


 

저자소개


 

지은이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호사카는 A급 전범 등 일본 군부의 주요 인사 4천여 명을 독자적으로 취재하고 150여 권의 책을 저술해 다치바나 다카하시, 사노 신이치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다. 1939년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태어났고 도시샤대학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편집자 생활을 하다 33세살 때 논픽션 작가로 홀로서기를 시도해 그의 출세작인 된 이 책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가 나오기까지 6년간 방송 작가, 카피라이터 등 부업을 하며 다섯 식구의 생활비를 벌며 버텼다.

일본근대사 특히 쇼와사의 실증적 연구에 뜻을 두고, 각종 사건 관계자를 취재하면서 역사 속에 묻힌 사건과 인물에 관한 르포르타주를 썼다. 일본의 양심적인 진보 지식인이 태평양전쟁 시기 자국의 잘못된 역사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자학사관’이란 딱지를 붙이는 일본 우익세력의 행태를 철저하게 비판하며 ‘자성自省사관’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 데서도 드러나듯 그의 저작은 잘못된 역사를 직시해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며 일본 사회의 치부를 정면으로 파고들어간다.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우익세력의 군국주의적인 망언이 나올 때면 이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철저한 비판을 하는 그의 코멘트가 유력 언론에 꼭 소개되는 등 일본현대사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

개인잡지 󰡔쇼와사 강좌󰡕(연 2회 간행)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쇼와사 연구로 기쿠치 간(菊池寬) 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작으로 󰡔쇼와 육군 연구󰡕, 󰡔지치부노미야󰡕, 󰡔요시다 시게루라는 역설󰡕, 󰡔쇼와사의 일곱 가지 수수께끼󰡕, 󰡔저 전쟁은 무엇이었는가󰡕, 󰡔정치가와 회상록󰡕 등이 있다.

 

옮긴이


정선태鄭善太

196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는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개화기 신문 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한국근대문학의 수렴과 발산』『시작을 위한 에필로그』『제국과 민족의 교차로』(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동양적 근대의 창출』『일본문학의 근대와 반근대』『가네코 후미코』『일본어의 근대』『지도의 상상력』『생활 속의 식민지주의』『창씨개명』『일본 근대의 풍경』(공역) 『삼취인경륜문답』(공역) 『일본 근대사상사』(공역) 『조선의 혼을 찾아서』(공역) 『기타잇키』(공역) 『검은 우산 아래에서』(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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