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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제목 식탁 위의 논어
도서정보 송용준 주해ㅣ가격 14,800원ㅣ분류 인문ㅣISBN 978-89-92920-76-6(부가기호03140)


 

“공자와 팟캐스트의 파격적인 만남!”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해석,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공자와의 직접 대면을 시도한다!


 


 


 

제 목

식탁 위의 논어

주 해

송용준

판 형

신국판

면수

416쪽

분 류

인문

가격

14,800원

발행일

2012년 9월 17일

ISBN

978-89-92920-76-6

(부가기호03140)



 


 

책소개


 

『논어』는 어떻게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가

 

송용준 교수와 가족들의 ‘논어’ 공부를 팟캐스트를 통해 일반에 공개하여 화제를 모았던 팟캐스트 [식탁 위의 논어]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지난 봄 팟캐스트 인문학 분야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식탁 위의 논어]의 탄생 배경은 소박했다. 장성한 두 딸과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보기도 힘든 처지에서 그래도 일요일 한 끼는 함께 밥을 먹으며 논어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둘째 딸이 평소 회사에서 중요한 미팅을 녹음해 다시 들어보던 습관대로 녹음을 해 두었는데, 들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백성 民 자가 남자 노예의 눈을 외눈박이로 만들던 전통을 반영하는 상형문자였다니, 萬人之上 一人之下의 자리에 있는 ‘재상宰相’은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 부엌(宰)의 요리와 잠자리(相)를 지키는 자리를 맡겼던 노예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니, 신선하지 않은가. 이런 강의를 우리 가족만 듣기는 아깝다는 생각에 스무 명 정도라도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족 후기 중에서)

 

송용준 교수와 가족들의 논어 강독은 2,500년 전의 공자가 제자들과 공부를 할 때 사용하던 ‘대화와 토론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듯하다. 전반적인 교안과 진행은 아버지인 송용준 교수가 맡고 있지만, 어머니의 재치 있는 지적과 젊은 두 딸이 덧붙이는 현대적 해석 및 질문은 듣는 이의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킨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예(禮)’는 사실 ‘실무교육’이라 할 수 있다는 송용준 교수의 말에 두 딸은 ‘결국 공무원 고시 패스를 위한 스펙 쌓기였구나!’라고 답하기도 하고, 공자가 단순한 실무교육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문교육을 병행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추앙받을 수 있었다는 내용에는 어머니가 ‘요새 대학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시사점을 찾아낸다. 이렇게 온 가족이 참여한 ‘식탁 위의 논어’는 젊은 세대에서 기성세대까지 모두가 교감하며 즐길 수 있는 따뜻하고 깊이 있는 강의로 거듭나게 되었다.

책으로 발간된 『식탁 위의 논어』는 기본적으로 팟캐스트와는 매체의 차별화를 꾀해 강의의 핵심을 추려 정확하고 완결성 있는 『논어』의 한글 주해와 해설을 담았다. 그동안 팟캐스트 강의를 들으며 원문을 일일이 찾아보기 힘들어 아쉬워하던 청취자들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고, 처음 책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생생한 『논어』를 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스마트한 고전, 국내 최초 팟캐스트 매치북!

그간 중국 고전의 번역에 상당한 업적을 쌓아온 송용준 교수는 금번 논어 번역에서도 단지 흥미로운 논어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어󰡕에 대한 충실한 번역과 해설을 부기했다. 번역과 그 이면의 의미를 알 수 있게끔 했다.

 

“『논어』는 대체로 공자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 말을 제자들이 그때그때 기록해둔 것이어서 앞뒤로 생략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논어』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읽으며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 장면을 나름대로 재구성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재구성해본 다음에 공자가 만약 그 당시의 한어(漢語)가 아니라 현대 한국어로 말을 한다면 어떻게 말했을까를 염두에 두고 번역을 해야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될 것이다. 모험이 뒤따르는 작업이지만 역자는 그렇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머리말에서)

 

무엇보다도 다른 책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이 책의 특성은 오디오 강의와 연계한 ‘팟캐스트 매치북’ 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식탁 위의 논어』각 편에는 오디오 강의 웹페이지로 연결되는 QR코드를 삽입하여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원격 독서가 가능하도록 했다. 스마트폰으로 저자의 강의를 들으며 흥미와 의문점을 품은 후에 책을 통해 정리를 해도 되고, 책을 먼저 접하고 나서 강의를 들으며 현대적인 해석과 시사점을 고민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지금 왜 공자인가?

 

‘춘추시대’라는 명칭은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노(魯)나라의 역사책인 『춘추(春秋)』가 기원전 722년부터 481년까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시기가 춘추시대와 거의 같아서 붙여진 것이다. 춘추시대에 이르러 각국의 제후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능한 관료의 등용이 절실해졌다. 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이상사회의 재건에 힘쓸 관료를 양성할 목적으로 인재의 교육에 임한 사람이 공자이다.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는 그의 진면목을 담고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곤 한다. 위정자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자의 사상이 이용되면서 공자가 권력자 편에 서서 민중을 억압한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리하여 중화민국(1912-1949) 초기에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사상혁명이 일어났을 때 진독수, 호적 등이 유교 타도를 부르짖게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에는 공자를 배척하는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공자의 가르침이 구체제를 유지하는 반사회적 교리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공자를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사회가 나름대로 안정기에 접어들자 공자에 대한 재평가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북경사범대학 교수인 우단(于丹)의 저서 『논어심득(論語心得)』이 중국에서 600만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우단은 이 책을 통해 현대사회에 만연한 파편화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강조했고, 공자의 가르침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맞아떨어지는 고전으로 새롭게 부활하였다.

인(仁)과 예(禮)를 중시하고 타인의 관점이 되어 배려하는 삶을 강조한 공자. 어지러운 춘추시대를 안정시키고자 정치에 뜻을 두었음에도, 방랑을 거듭한 끝에 노나라로 돌아와야만 했던 그는 시대를 잘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인 것 같다. 실패한 출사였음에도 돌아와 좌절하지 않고 여생의 대부분을 교육과 고대 문헌 정리에 힘을 쏟아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전 인류사회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논어』의 「위정편」 4장에서 공자는 50세가 되었을 때 ‘지천명(知天命)’을 깨달았다고 했다. 스스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일이 있으며, 그것이 하늘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공자에게 이러한 깨달음은 운명에 대한 굴복이 아니었다. 세속적인 성공과 실패를 떠나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공자가 강조한 삶의 태도였다.

송용준 교수는『논어』를 지배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상태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공자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직접 공자와 대면할 각오로 󰡔논어󰡕와 마주해야 한다고 한다. 실현 불가능한 상상임에 틀림없지만 적어도 그런 희망을 갖고 이 명저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면서 세계가 파편화된 지금, 탈근대의 전망을 선취하기 위해서라도 󰡔논어󰡕는 적극적으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책 속으로   

* 공자가 현대한국어로 말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논어』는 대체로 공자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 말을 제자들이 그때그때 기록해둔 것이어서 앞뒤로 생략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논어』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읽으며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 장면을 나름대로 재구성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렵고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재구성해본 다음에 공자가 만약 그 당시의 한어(漢語)가 아니라 현대 한국어로 말을 한다면 어떻게 말했을까를 염두에 두고 번역을 해야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될 것이다.

- 머리말에서



* 공자는 최초의 사학 설립자였다!

공자가 사학(私學)을 열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관료가 되는 데 필요한 실용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취직을 알선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등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교육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실용의 학문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인생의 이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가르칠 때에도 그는 예의 형식 속에 담겨 있는 군주에 대한 존경, 친구에 대한 신의, 죽은 자에 대한 추모의 정신을 강조했다. 고대의 기록을 문자 서사의 지침서로 삼아 익히는 데 있어서도 그것을 통해 정치의 이상과 승리자의 덕행을 배워 실제에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처럼 공자의 교육은 관료라는 일자리를 찾게 해주는 직업교육임과 동시에 내면으로 자신을 성찰하여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인문교육이었다.


 

 

 

 

 

(『논어』를 읽기 전에)


* ‘붕(朋)’은 ‘오래 사귄 벗’이란 뜻인가?

 

學而時習之, 不亦說(열)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부)知而不慍(온), 不亦君子乎?

예(禮)를 배우고서 때를 정하여 그것을 실습하면 참으로 기쁘지 않겠는가! 뜻밖에도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먼 곳에서 찾아와 주니, 참으로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울분을 품지 않는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인간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붕(朋)’은 ‘오래 사귄 벗’이 아니라 공자의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가리킨다. 공자 입장에서는 스스로 사학(私學)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쳐서 관료로 취직시킴으로써 이상사회를 재건하겠다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으므로 그 목적에 동참하겠다고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가까운 데서가 아니라 공자의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으니 정말 즐겁지 않았겠는가! 다만 그렇게 찾아온 사람이 아직은 정식으로 제자가 된 것은 아니므로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 정도로 칭하여 ‘붕(朋)’이라고 했을 것이다.

-본문 19p, [학이편」 1장 中

 

*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힘을 하는 분투

 

子曰 :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유)矩(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의 길에 들어서기로 뜻을 세웠고, 서른에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마흔에는 앎을 바탕으로 미혹됨이 없게 되었고, 오십에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고, 예순이 되어서는 무엇을 들어도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을 하건 그다지 애쓰지 않아도 도를 넘어서는 일이 없어졌다.

 

‘지천명(知天命)’을 직역하면 ‘천명을 알다’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공자의 일생을 그린 포물선의 정점은 천명을 알게 되었던 오십 세 때일 것이다. 이 천명이 문제인데 공자에게 하늘[天]은 아직 정의를 집행하는 신이 아니었다. 하늘은 전혀 알 수 없는, 두려운 힘을 가진 존재였다. 아무리 인사(人事)를 다해도 무언가 알 수 없는 원인 때문에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천명(天命), 곧 하늘의 작용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성패를 뛰어넘은 분투가 공자가 최후에 도달한 각오이고 실제로 그 이상의 인생관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논어』)라고 해설한 것이 설득력이 있어서 여기서도 “인간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다”라고 번역하였다.

- 본문 39p, 「위정편」 4장 中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앎

 

子曰 : 由! 誨(회)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안다는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것이 가장 잘 아는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학문 분야에서 자신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 본문 45p,「위정편」17장 中

 

* 아는 것,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子曰 :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성으로 아는 것은 감정으로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감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온몸으로 즐기는 것만 못하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거나 이해하는 것은 인식과 식별의 차원인데,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을 좋아할 수 있다면 감정의 지원을 받는 것이 되어 그것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고,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니 가장 높은 경지라는 말이다.

- 본문 120p,「옹야편」20장 中

 

* 실인(失人)도 말고 실언(失言)도 말라

 
子曰 :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속에 있는 말을 나눌 수 있다고 판단했으면서도 털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잃게 된다. 속에 있는 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으면서도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실언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으며 실언하지도 않는다.

 

이 장은 말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 깊은 말씀으로 보인다.

- 본문 308p,「위영공편」8장 中



* 공자가 칭한 女子와 小人의 뜻

 

子曰 :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첩과 하인은 데리고 있기 어렵다. 잘 대해주면 기어오르고 쌀쌀하게 대하면 원망한다.

 

‘여자(女子)’와 ‘소인(小人)’은 문면에 나와 있는 대로 보통 ‘여자’와 ‘소인’으로 번역하는데, 문맥을 고려하여 현대 사회에 맞게 첩과 하인으로 번역하였다. 실제로 중국 고대에는 ‘여(女)’로 여자 노예를 지칭하기도 했으며, ‘첩(妾)’은 본의가 ‘이마에 문신을 새겨 넣은 여자 노예’였다.

- 본문 359p 「양화편」 25장 中

 
 


 


 


저자소개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 지금의 산동성 곡부에 자리잡은 노(魯)나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어윈 불우한 상황에서 일정한 스승 없이도 공부에 정진해 노나라에서 벼슬길에 올랐다. 노나라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지만 실권자와 정치적 견해가 맞지 않아 노나라를 떠났다. 그 후 제(齊)나라로 갔지만 역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도 공자는 단념하지 않고 위나라, 송나라, 진나라, 채나라 등의 작은 나라를 찾아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출사의 꿈을 접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 여생의 대부분을 교육과 고대문헌 정리에 쏟아 중국뿐만 아니라 전 인류사회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기원전 47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송용준(宋龍準)

가족들과의 논어 공부를 팟캐스트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해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송용준은 1952년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중어중문학과에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군사관학교 중국어교관,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중국사회과학원 등에서 연구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장과 HK문명연구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송시사(宋詩史)』(공저),『송시선(宋詩選)』(공편),『중국시율학(中國詩律學)』,『소순흠시역주(蘇舜欽詩譯註)』,『구북시화역해(甌北詩話譯解)』,『도연명시선(陶淵明詩選)』,『진자앙시선(陳子昻詩選)』,『고계시선(高啓詩選)』,『진관사연구(秦觀詞硏究)』,『당송사사(唐宋詞史)』(공역),『유영사선(柳永詞選)』,『도화선(桃花扇)』(공역),『중국어어법발전사』(공역),『현대중국어문법의 제문제』등의 저역서와 「당시형성과정연구」, 「송시형성과정연구」, 「북송사론연구」, 「이색(李穡)시의 송시 수용과 그 극복」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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