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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주목하는 책
제목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도서정보 최용범 지음│13,500원│분야 : 인문 / 역사 ISBN 9788995826638 03900


 

10만 독자가 선택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의 개정증보판

  현재 한국사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5천년을 이어온 방대한 역사의 무게에 지레 겁먹고 역사서를 멀리한다. 이미 10만 독자가 선택한『하룻밤에 읽는 한국사』개정증보판은, 이렇게 한국사를 알고는 싶으나 방대한 역사에 읽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한국사의 흐름을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간결하게 정리해준다. 기존의 역사서가 시대적으로 사건을 나열하는 다소 지루한 서술방식이라면, 이 책은 호기심이 가는 각각의 주제들을 통해 전체적인 시대상을 아우르는 형식을 취한다. 각 주제 또한 서너 쪽의 짧은 호흡으로 나뉘어 있고 이해를 돕는 그림과 사진이 곁들여져 있어 중고생이나 역사를 어렵게만 느꼈던 독자들도 한국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각 장마다 짜임새 있게 배치된 풍부한 자료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흥미를 유발한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기존 내용의 오류를 꼼꼼히 잡아내고 새로운 부분도 추가하여 초판과 그 내용을 달리했다. 고구려가 우리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장수왕의 평양수도 천도였다는 내용과 구한말 동학사상에 대한 내용 등 초판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내용이 새롭게 증보되어 그 의미를 더한다.

방대한 한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교과서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꼼꼼히 챙겨주면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특히 청소년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 키워드를 간결하게 정리했다.

 

1. 책소개

‘오로지 우리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우리 역사의 치부가 일제와 군사정권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저자는 우리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금속활자를 철저히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여 '부끄러운 보물'이라고까지 말한다.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200여 년 앞서 발명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나타내는 증거로 흔히 거론되는 금속활자가 왜 부끄럽다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최초'라는 딱지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구텐베르크는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금속활자와 함께 인쇄기를 발명하여 인쇄출판 체제를 정립했다. 그리고 인쇄술은 지식의 대량보급을 가능케 해 서양의 역사를 전변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고려의 활자는 '지식의 대중적 보급'이라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단지 소수의 지식층 소유물에 그치고 말았다. 저자는 '최초'라는 타이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유용하게 쓰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애정 어린 쓴소리를 한다. ‘우리 것이 무조건 최고다’라는 국수주의적 생각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저자의 예리한 시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갈 우리 세대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왕건의 <훈요 10>! , 전라도 사람은 기용하지 말라고?

 

이 책은 시대별로 그 구분이 나누어져 있는 연대표를 각 장의 도입부마다 제시하여 그 시대의 결정적인 사건들의 흐름을 한눈에 제시한다. 그러나 본문에 이 연대표에 나와 있는 사건만이 나열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역사의 큰 사건들과 더불어 그동안 가려져왔던 사실들을 역사의 더께를 걷어내고 재조명한다.

전라도 사람을 절대 기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왕건의 <훈요 10>는 오늘날 지역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조항을 왕건도, 그리고 후대 왕들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조항은 왜 만들어졌을까? 왕건이 후백제와 힘겨운 전투를 하다가 이긴 바가 있기에 후백제의 근거지인 전라도에 대해 차별정책을 취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왕건 자신조차 최측근에 전라도 사람을 둔 사실은, 아직도 <훈요 10>를 들어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뜨끔할 이야기이다.

 

현대 한국보다도 강했던 고려의 여권

 

일부일처제가 주를 이루었던 고려시대, 재상 박유는 인구정책을 위해 첩을 들이자는 건의를 했다. 그러나 그의 건의는 묵살되고 말았다. 부녀자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박유는 이 건의로 인해 “첩을 두자고 건의한 거렁뱅이 같은 늙은이” 소리를 들으며 부녀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적 사건 한토막을 늘어놓으며 고려시대의 강력한 여권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여성들의 권리행사는 일부일처제를 반대하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산도 아들딸 구별 없이 상속받았다는 것, 그리고 여자도 집안을 대표하는 호주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 고려여성들은 가정생활이나 경제운영에 있어서 남성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저자는 이를 흥미로운 예로 쉽게 풀어내어 독자로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 광해군이 조선 최고의 외교정책가라고?

 

저자는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이 쿠데타세력의 역사왜곡 때문에 폭군으로 낙인찍혔다고 강조한다. 역사기록이란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서 서술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자시절 아버지 선조의 미움을 받은 까닭은 배성들의 광해군에 대한 인기가 선조를 능가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시절,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대군들의 집이 불탔던 반면 광해군의 저택만 온전했겠냐는 것이다.

강력한 후금과의 전쟁은 피해야겠기에 중립외교를 절묘하게 구사했던 광해군. 그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쟁의 참상을 느꼈던 군주였다. 명과 청을 오가는 줄타기 외교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했던 것은 오로지 광해군의 공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특히 광해군을 권력에서 끌어내린 쿠데타세력도 결국 광해군의 정책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보면 그의 외교정책이 합리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교과서가 외면한 근현대사의 그늘

 

역사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근현대사 서술부분이다. 금기시 되는 주제가 많은 데다 쓰는 이의 관점에 따라 편향적인 내용으로 치우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는 금기와 편파라는 두 가지 장애물을 넘고 근현대사를 가장 중립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김일성 가짜설’에 대한 진실규명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저자의 균형적 시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일부 연구자들의 학문적 뒷받침까지 있었던 ‘김일성 가짜설’은, 그러나 진실이 아니었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 권위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진실을 규명한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김일성의 항일경력을 부정하고 싶어 ‘김일성 가짜설’을 유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남북한 중 한 세력을 옹호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북한의 ‘김일성 신화화’까지 언급해둔다. 한마디로 김일성 항일투쟁의 실상과 가짜논쟁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1945 12 27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인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저자는 이 기사가 현대사 최대의 왜곡보도라고 전한다. 이 기사로 인해 국내에 반탁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반소정신이 자리 잡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소련은 신탁통치가 아닌 후견을 제시하였는데 동아일보가 이를 오보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익세력은 반소반탁의 민심을 얻고 좌익세력과 대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족통일 문제도, 친일파 청산문제도 도외시되었고, 결국 이 논란이 남북분단을 불러일으켰다고 저자는 탄식한다.

이처럼 한국사의 민감한 부분을 다루면서도 공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2. 저자 소개

 

지은이 최용범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왔다. 졸업 후 처음으로 다녔던 회사가 월간 『사회평론 길』이었다. 기자생활을 한 덕에 사람을 만나는 직업에 익숙한 그는 더난출판사 기획팀장을 지내면서 출판기획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출판계가 불황이던 시절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한국의 부자들』을 기획해 세인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대목은 근현대사다. 그가 유년시절 배웠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에 많은 고민을 했단다. 50년간을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한반도의 풀리지 않는 이야기. 누구에 의해 625전쟁이 이뤄졌을까. 과거 역사기록들은 때론 승리자의 시각에서 집필돼 왔기에 이를 전제로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보면, 우리가 놓쳐왔던 순간순간의 왜곡된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출발한다. 한 개인의 역사가 세계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우리네 가족사가 조선의 역사가 되듯, 역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역시 사람에 의해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그에겐 이제 기자보다는 역사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한때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생각을 갖기도 했던 열혈청년이었다. 학창시절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인도 되고 싶었던 그의 삶은 세상의 관찰자 입장에 선 기자, 역사작가, 출판기획자라는 타이틀로 채워졌다. 그런 그에겐 아직도 문학정서가 남아 있어 우리네 역사를 들춰볼 때면 항상 마음 아파한다. 바로 그런 정서가 균형적 시각을 잡아주는 에너지가 됐다고 저자는 토로한다.

저서로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13인의 인물-역사인물 가상인터뷰』, 『대학문예운동의 이론과 실천』(공저)『너희가 대학을 아느냐』(공저) 가 있다.

 

 

3. 차례

 

1 | 선사문화와 고대국가 건설_ 고조선의 성립과 삼국시대의 전개

 

훈족이 한반도 출신이라고?

그 많은 고인돌이 말해주는 것

단군신화, 어떻게 볼 것인가?

삼국의 건국설화에 숨어 있는 세 가지 이야기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였던 가야

광개토대왕은 어떻게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한반도 역사를 바꾼 평양천도

고대사 최대의 수출국 백제

고구려 삼국통일의 기회를 망친 운명적 수도이전

법흥왕대의 친위쿠데타, 이차돈 순교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을까?

동북아시아 두 강국의 결전, 고구려-수나라 전쟁

의자왕의 향락 때문에 백제가 망했다?

연개소문 일가의 빛과 그림자

신라가 최후의 승자로 남은 이유

­신라에 왔던 아랍인들

 

2 | 통일신라와 발해_ 삼국통일을 거쳐 남북국시대로

 

대조영, 고구려 계승을 선언하다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발해의 목줄이 달린 해외무역

원효가 해골에서 본 것은?

호족세력의 불교, 선종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무엇을 꿈꾸었나?

골품제사회 6두품 지식인의 좌절

효녀 지은설화에서 통일신라의 붕괴를 본다

궁예가 몰락한 진짜 이유

통일전쟁 승리 직전에 패배한 견훤

왕건의 쿠데타는 계획적이었다

­매춘녀가 없었던 발해

 

 

3 | 고려시대_ 후삼국 통일에서 위화도 회군까지

 

왕건, 혈연 네트워크로 후삼국을 다스리다

<훈요 10>, 전라도 사람은 절대 기용하지 말라고?

본관제는 고려에서 시작됐다

천하의 중심은 고려다

‘광종의 개혁’ 절반의 고시, 과거제의 도입

전시과 도입, 정권의 성격이 경제제도도 결정한다

너무나도 판박이인 왕비들의 꿈

대거란전쟁 제1라운드, 외교전에서 완승을 거둔 서희

대거란전쟁 제2라운드, 군사력의 승리

최고 권력자 이자겸의 반란

‘묘청의 난’ 자주적 민족운동인가, 불만세력의 반란인가?

고려청자 아름다움의 비밀

금속활자, ‘세계 최초’란 딱지가 부끄러운 보물

한국이 코리아로 불리게 된 이유

사대주의냐, 냉엄한 춘추필법이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무신정권,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천민해방운동, 만적의 난

대몽 항쟁기의 거대 프로젝트, 팔만대장경

반외세 항쟁이냐, 수구세력의 마지막 저항이냐?

어디서 감히 첩제도 운운하나

친일파가 있었듯 부원파도 있었다

공민왕의 개혁, 신돈은 요승이었나?

열 개의 목화씨로 남은 사나이, 문익점

끝을 모르는 권문세족의 탐욕

­거북선의 원형, 고려 군선

­송나라 대시인 소동파가 고려와의 무역을 반대했던 이유

 

4 | 조선시대_ 근세의 태평시대를 거쳐 민중반란까지

 

500년 조선왕조를 연 랴오둥 정벌군의 회군

역성혁명의 기획자, 정도전

고려말 권문세족의 토지문서를 불태우다

정말 신문고만 치면 됐나?

세종대왕, 그토록 조화로운 인간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시계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 세 가지

세조의 쿠데타 ‘왕권강화냐, 명분 없는 권력욕이냐?

속치마 폭까지 규정한 조선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

조선의 네로 황제 연산군의 최후, 중종반정

조광조, 어느 깐깐한 개혁주의자의 죽음

누가, , 무엇 때문에 싸웠는가?

임진왜란은 무역전쟁이었다!

불패의 게릴라 부대, 의병

이순신이 넬슨보다 위대한 이유

세계로 수출된 지식상품, 『동의보감』

광해군, 조선시대 최고의 외교정책가

인조반정, 성공한 쿠데타는 역사도 처벌 못 한다?

병자호란, 그날 인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현세자 독살설의 진상

영조, 정쟁의 한복판에서 중흥시대를 열다

정조가 수원에 열두 번 간 까닭은

조선에도 장사로 큰돈을 번 여자가 있었다

전봉준은 정말 정약용의 개혁론을 만났을까?

검찰이 구속한 신윤복의 춘화

세도정치, 2만냥 주고 고을 수령을 산다?

용병을 고용한 평안도 농민전쟁

<대동여지도>, 김정호는 정말 옥사했는가?

세도가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간 흥선대원군

­봉급 한 푼 없었던 조선시대의 향리

­연을 이용한 상징조작으로 내란을 진압한 김유신

 

5 | 근대의 전개와 현대사회의 성립_ 제국주의 침략에서 민주국가 수립까지

자주적 근대화의 발목을 잡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강화도조약, 새끼 제국주의국 일본에 일격을 당하다

임오군란 후 외국군이 주둔하다

노터치No-Touch가 노다지의 어원이라니!

김옥균의 삼일천하, 갑신정변

동학의 창시와 농민혁명의 전개

녹두장군 전봉준의 꿈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초대위원장이었다

평민에게 넘어간 의병투쟁의 지도권

을사조약, 불법조약 체결을 강요하다니!

3·1운동, ‘동방의 등불’이 된 코리아!

‘대한민국임시정부’ 신채호, 이승만에게 일갈하다

홍범도,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다

일제와의 야합 속에 진행된 예비 친일파의 자치운동

일제하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조직, 신간회

김일성은 가짜였다?

잔혹한 수탈과 억압을 자행한 일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 친일파문제

8·15해방과 건국준비위원회, 반쪽짜리 독립

찬탁은 재식민화의 길이었나?

식민잔재 청산, 그 통한의 좌절

비전쟁기간에 일어난 최대의 학살극, 4·3항쟁

남침이냐, 북침이냐?

한국 민중, 최초의 승리를 거두다 ‘4·19혁명’

박정희 개발독재의 빛과 그림자

광주민주화항쟁에서 노무현정부까지

 

4. 책 속으로

 

■ 세력권 구축을 위해 평양을 새 도읍지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내륙 깊숙이 박혀 있는 국내성과 달리 평양은 교통의 요지로 한반도와 대륙을 동시에 아우르는 입지에 있다. () 수도천도가 기존세력의 타격과 신진세력의 기반 다지기라는 것은 고려에서의 몇차례에 걸친 평양천도 시도와 조선의 한양천도와 맥을 같이하다. ()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백제와 신라는 공동의 대응도 마다하지 않으며 고구려에 고슴도치처럼 저항하는 형세가 돼버린 것이다. 고구려는 대륙으로 뻗어가는 힘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강유역을 둘러싼 지리멸렬한 싸움에 국력을 소진하게 된다. ()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귀족대신세력에 대한 견제 역시 장수왕 사후에는 귀족세력의 파워가 왕권을 능가하는 형세로 전개됐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한반도 역사를 바꾼 평양천도」(44~45)

 

■ 발해를 한국사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근거로 당시 발해와 통일신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발해와 통일신라가 대립 갈등하면서도 한민족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해석할 만한 증거는 많다. 양국은 당이 외국인을 위해 설치했던 빈공과의 수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당이 양국의 외교서열을 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신경전을 벌였는데, 이는 발해와 통일신라가 ‘삼한’의 적자가 어느 나라인가를 놓고 경쟁했음을 보여주는 일례들이다.

―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82)

 

■ 사실 왕건의 쿠데타는 오래전부터 준비됐다고 볼 수 있다. 송악의 유력한 호족이었던 아버지 왕륭은 아들을 어릴 때부터 야심을 갖도록 키웠다. 왕륭이 그의 성과 병사를 궁예에게 바치면서 정치적 제휴를 맺을 때, 송악 성주를 왕건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했던 것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태봉의 중심거점이 될 송악을 아들에게 맡겨 대업을 준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 「왕건의 쿠데타는 계획적이었다」(114)

 

■ 마이클 H. 하트에 따르면 구텐베르크는 활자, 인쇄기, 잉크, 종이 등 인쇄출판에 필수적인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연구 끝에 대량 인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의 발명은 지식의 대량 보급을 가능케 해 서양의 역사를 전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 반에 고려는 활자의 진정한 의미인 ‘지식의 대중적 보급’이라는 역할을 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 미디어 혁명을 가져오기에는 기술적, 사회적 토대가 미약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개발했을 금속활자는 단지 소수의 지식층이 보는 불경을 소량 인쇄하는 데만 쓰였을 뿐이다.

― 「‘세계 최초’란 딱지가 부끄러운 보물」(160~161)

 

 

■ 박유는 충렬왕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려 고려 여성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처를 하나 두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 청컨대 신하들로 하여금 품계에 따라 처와 첩을 두게 하고, 백성들은 한 명의 처와 첩을 두도록 법을 만든다면 원성은 줄어들고 인구는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 그러나 그의 건의는 묵살되고 말았다. 부녀자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박유가 연등회 행사를 갔을 때 한 노파가 박유를 가리켜 “첩을 두자고 건의한 거렁뱅이 같은 늙은이!”라고 소리치자, 주변의 부인들이 모두 박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야유를 보냈다.

― 「어디서 감히 첩제도 운운하나」(185~187)

 

■ 신문고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그리 쉽사리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었다. ()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은 먼저 해당 관청에 호소했다가 거기서 해결이 안 되면 사헌부를 거쳐야 신문고를 칠 수 있었다. 신문고를 칠 때도 담당 관리에게 억울한 내용을 진술하고, 사는 곳을 확인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치더라도 담당 관리가 위에 보고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러니 지방에 사는 백성이 한양까지 올라와 신문고를 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노릇이었다.

― 「정말 신문고만 치면 됐나?(220)

 

1996 8월 검찰은 음화 반포 혐의로 월간『스파크』의 발행인을 구속했다. 구속 이유는 성인잡지 『스파크』의 창간호에 김홍도와 신윤복의 춘화 넉 점을 게재했다는 것이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2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후손들의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춘화를 그린 김홍도와 신윤복이 국가기관인 도화서의 화원이었다는 점이다. 도화서는 임금의 어진(초상화)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국가공식기관이었다.

― 「검찰이 구속한 신윤복의 춘화」(296)

 

■ 동학농민전쟁은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위대하다. 조선후기 이해 농민항쟁의 총결산이자 반외세의 기치를 가장 크게 내건 운동이었다. 동학농민전쟁으로 인해 지배층은 봉건적 지배체제에 대한 개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오개혁안에는 신분타파, 수취제도 개선 등 농민들이 바라던 바가 불충분한 형태로나마 담기게 된 것이다.

― 「녹두장군 전봉준의 꿈」(349)

 

■ 보천보전투로 인해 김일성은 한국민들에게 영웅적인 독립투사로 각인되었다.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만주 항일유격대시절의 무장투쟁은 김일성을 북한에서 최고권력자의 자리로 올라서게 해준 밑거름이었다. 그런데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김일성은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전설적인 영웅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해방 직후에 도용한 가짜”라는 ‘김일성 가짜설’을 유포시켰다. () 김형욱은 회고록에서 ‘김일성 가짜설’이 박정희시절에 더욱 강하게 유포되었는데, 이는 일본군 장교로서 독립군 토벌작전에 나섰던 전력 때문에 박정희가 김일성의 항일경력을 부정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 「김일성은 가짜였다? (381~382)

 

■ 친일행위 중 가장 악랄한 것은 일본의 경찰과 군인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넣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명백한 ‘악행’이었기 때문에 행위 이상의 나쁜 영향은 없었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교묘한 논리로 동족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행위였다. ()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우리는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이나 남편을 전장으로 보낼 각오를 가져야 한다. ()

―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명 이사 김활란, 해방 후 이화여대 총장

“천왕폐하께 한가지 바치옵는 정성이련만 총을 잡는 어깨는 보람이 차는 것을……”

― 시인 주요한

이러한 친일행각에 대해 당사자들 중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한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반역의 역사, 친일파문제」 (387~388)

 

 

5. 추천의 말

 

금기사항을 깨고 가치중립적으로 근현대사를 기술하다!

 

사건을 지루하게 늘어놓고 현대의식이 결여된 해묵은 역사이론을 서술하고 있는 교과서는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뻔하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역사책을 쉽고 재미있으면서 의미있게 써야 한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는 이런 역사 대중화를 취한 책 중의 하나로, 한국사에 대한 이해와 학습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근현대사’ 서술부분으로 교과서에서 다루기 꺼려하는 금기사항을 깨고 가치중립적 시각으로 근현대 역사를 기술했다는 데 있다. 이는 현대에 사는 우리 독자들의 역사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 이이화(역사문제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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